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

Updated: Oct 3, 2019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

마태복음 6:9-13

마태복음 6: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Opening

지난 번엔 저희가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한 맺힌 과부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의 자세를 함께 배우고 나누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 하지 말며, 이 믿음 기도의 비밀인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기도의 자세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저희들에게 기도의 완벽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로 보통 저희들이 “주기도문, 주님의 기도” 라고 알고 있고 배우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이 어떤 내용은 기도를 하는 것이 정말 바른 기도인지 배우길 원합니다. 이 기도는 또한 중보기도를 위한 기도의 내용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개인이나, 가정, 교회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 주기도문을 기초한 중보기도 또한 놀라운 힘이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Ex) 수류탄을 사용하는 방법 두가지: 한가지는 그냥 돌멩이 같이 던져서 목표물을 맞추는 것, 나쁘지 않음. 하지만 두번째, 핀을 뽑아 폭발 시킴 원래 목적 되로 사용될 때 엄청난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기도문, 기도의 능력을 대표하는 이 기도를 우리들은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11:1 “예수께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유대 배경을 가진 제자들은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카디쉬 (아람어로 거룩한) 란 기도문을 늘 암송했고, 18가지 소망을 담은 18 기도문이란 기도를 하루 세번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서 주님의 기도가 무엇인가 다르다 하는 느낌을 받은 듯 하였습니다. 당시 랍비 들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는 랍비의 모든 사상과 정신, 운동을 대표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 예수님의 정신을 닮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는 기도입니다. 큰 구조로 보면 주기도문은 4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기대의 대상이 누구신지 둘째는 하나님을 향한 3가지 기도 셋째는 자신과 공동체를 향한 3가지 기도, 마지막으로 송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기도하신 그 기도를 문자적으로 따라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기도가 가지고 있는 내용과 정신을 가지고 이러한 순서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주기도문 1만번 하고 병을 고치셨다, 문제를 해결 받았다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런 하나님이 충분이 그 마음을 보시고 믿음을 보시고 축복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의도를 먼저 저희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의 순서

삶의 우선 순위를 가지고 있듯이 기도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 보면 알다 싶이 저희들은 일단 저희들이 급한 기도의 제목을 먼저 이야기 하기 마련입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당장의 내 심각한 문제가 어떤 것 보다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께 집중함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분명한 기도의 순서를 아시고 무엇이 중요한지 잊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겐 분명한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시간을 사용하는데, 물질을 사용하는데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선 기도해야 할 기도의 제목들이 존재합니다. 이 우선 순위가 어그리지만, 그 때부터 문제가 더 심각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급한 것이 모두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순서 또한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먼저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필요를 구하심으로 먼저 기도할 제목, 저희들의 삶의 우선순위와 기도의 우선순위를 보여 주십니다.


기도의 대상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문을 여는 첫번째 내용은 우리들의 기도를 드리는 대상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말씀을 드린 것 처럼 이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의 모범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는 자녀가 아버지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종교들의 기도와 예수님의 기도가 다른 것입니다. 기도가 불교에도 있고, 이슬람에도 있고, 자연종교들에게도 있습니다. 가나안 이방 종교인 바알과 아세다롯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무슬림들도 하루 5번 어디를 가든지 기도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러한 기도는 대부분 기계적인 기도입니다. 단순히 기도문을 습관적으로 암송할 뿐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기도가 또한 그러 하였습니다. 그것을 외식하는 기도라고 하며 주님은 강하게 경계를 하셨습니다. 참된 기도는 이방인 같이 그냥 기계적으로 외워하는 비인격적인 것도 아니고, 당시 유대인들 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도 아닙니다.

참된 기도는 오늘 주기도문의 첫 부분을 통해서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참된 기도는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기도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대화가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기서 저희들은 기도의 선결 조건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가지고 있냐는 것입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뭐 부탁하기도 힘들어 합니다.

구원의 경험: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렇습니다. 이 권세가 바로 자녀의 권세,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며,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대통령을 아무나 만날 수 있나요? 없습니다. 사전에 예약(?) 하고 background check 하고 스케쥴을 만들고, security check 까지 모두 한 다음 꼭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만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아들과 딸은 그냥 가서 만납니다. 예약 필요 없습니다. Background check 필요 없습니다.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가서 만나 필요를 청할 수 있습니다. 왜 입니까?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7-11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당신의 구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경험이 있느냐? 다시한분 점검하길 원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확실하며, 내가 정말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이 분명한가? 하나님이 먼 동네 아저씨가 아니라 정말 내 아버지 인가?


로마서 8:14-16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사실 기도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조차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집에 아버지가 눈뜨고 살아 계신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가 민망했습니다. 기도도 하는듯 하였지만, 그것은 그냥 모방이고 흉네만 내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 장 29절의 사건이 저에게 다가 왔습니다.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저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내 추하고 더러운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이 저의 실제가 되고, 내 무거운 죄의 짐이 마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 인 것이 너무 당연히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비로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확실히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럼 기도의 문이 열릴 확실한 조건이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며 기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이 구원의 확신이 긴가 민가 하면 말씀을 해 주세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도록 기도하며 도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아버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늘에 계시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어디 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세계관에서 하늘은 3가지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하늘은 “sky” 로 저희들이 보통 이야기 하는 대기권으로 새들이 날고 구름이 다니는 곳을 말합니다. 둘째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 우주의 은하들이 있는 우주 공간 space을 말합니다. 마지막 세번째 하늘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인 Heaven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후서 12장 2절에 셋째 하늘을 다녀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온 세상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있나요?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 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시 139: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기자는 하늘에 올라 가도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스올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으로 죽어도 그곳에 계시고, 새처럼 새벽 날개를 치고 바다 끝에 가서 머물 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온 땅의 주이며, 온 세상의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없으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온 세상에 충만히 거하실 뿐 아니라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창조주로써 권세와 능력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좋으신 분을 뛰어 넘어 하늘과 땅의 주인이 되시면, 불가능한 것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들이 오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께 우리들이 오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아주 독특한 내용중 하나가 아버지는 단순히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 입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옆의 친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우리들의 관계가 무엇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바로 형제와 자매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단순히 개인적인 경건생활을 위한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과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무소 부재” 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내 형제의 자매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공동체의 기도가 바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를 저희가 기억할 때 마다 나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나의 이웃, 형제, 영적인 가족, 그리스도의 한 몸된 교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많은 경우 우리들은 신앙을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 버립니다. 내 신앙은 내 신앙이고, 너의 신앙은 너의 신앙이고 상관없고 나만 잘 살면 상관없다 하는 태도를 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정신은 아닙니다. 교회 지체들을 내 형제, 내 자매로 생각을 할 때 그곳에서 하나님이 나라가 시작됩니다. Ex) 한번 함께 성경을 공부한 형제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가야했습니다. 짐도 있고 버스를 타면 4시간이 넘게 걸리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저에게 마음에 물어 보시는 것입니다. “야, 만약 네 동생이 그렇게 간다고 하면 넌 차도 없고, 짐도 많은데 혼자서 버스 타고 가르고 하겠느냐?” 전 당연히 제가 차로 라이드 해 주어야 하죠? 생각하였습니다. 그날 주님은 저에게 그 형제에게 그렇게 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복 6시간을 넘게 그날 운전을 하였습니다. 형제를 대하는 것과 이웃을 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제자 공동체가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는 가족 공동체가 되길 원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기도문의 서론을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신 전능하신 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일뿐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출발은 바로 관계의 시작에서 출발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아버지에게 오늘 기도를 새롭게 시작하길 바랍니다.

이제 기도의 내용에 들어가면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주님의 기도는 6가지 청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3번째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청원이고, 4-6번째 까지는 우리들의 필요에 관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가 마무리 되면서 송영 부분을 함께 하며 마치게 됩니다.


첫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둘째, 나라가 임하시오며

셋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넷째, 오늘 우리에게 1)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다섯째, 우리가 우리에게 2)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여섯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3)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첫번째 기도의 내용: 그분의 이름을 찬양

가장 먼저 예수님이 기도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 옵는 것”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성품과 삶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렇지 외워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삶에 경험되어지고 발견되어진, 체험적인 하나님을 고백하는 신앙 고백적인 기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들을 저희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통해서 저희들은 하나님의 깊은 성품들을 발견하고, 경험하게 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첫 부분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부분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시 148: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Let them praise the name of the LORD: for his name alone is excellent; his glory [is] above the earth and heaven."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분의 거룩하심을 높이는 것입니다. 찬양은 기도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스텝입니다. 찬양은 사실 저희들의 신앙고백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삶이, 깨닫고 체험한 삶이 바로 우리들의 찬양입니다. 그리고 이 찬양은 하나님의 성품 그 이름을 정확히 알아야 참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몇가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본 그분의 성품,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한 이름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Praying the 23rd Psalm by Elmer L. Towns (엘머 L. 타운즈의 시편 23편 기도/쿰란 출판사)에 보면 시편 23편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이름을 가지고 기도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그것을 나누길 원합니다. 이 속에 여름분이 경험하고 체험하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발견해 보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며, 혹시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이름이 있다면 경험할 수 있도록 소망하고 기도하십시오.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여호와 로이(Yahweh-Rohi), 여호와는 나의 목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라 - 여호와 이레(Yahweh-Jireh), 여호와는 나의 공급자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 여호와 아도나이(Adonai), 여호와는 나의 주인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 여호와 샬롬(Yahweh-Shalom), 여호와는 나의 평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 여호와 라파 (Yahweh-Rapha) , 나의 치료자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 여호와 치드케누(Yahweh-Tsidkenu), 나의 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 여호와 삼마(Yahweh-Shammah), 임재하시는 나의 하나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호와 엘 엘리온(El-Elyon), 지존자 나의 변호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 여호와 닛시(Yahweh-Nissi), 나의 깃발

기름으로 내머리에 바르셨으니- 여호와 메카데시(Yahweh-Mekaddesh), 나의 거룩한 분

내 잔이 넘치나이다 - 여호와 엘 샤다이(El Shaddai) , 전능하신 하나님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 여호와 엘로힘(Elohim), 나의 보호자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여호와 엘올람(El-Olam), 여호와는 나의 영원한 하나님

시편은 다윗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바로 다윗이 찬양인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보여주며 드려지는 찬양입니다.

시편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 할찌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감사와 찬송함으로 나아간다고 시편기자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면”

기도할 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분을 찬송하며 나아가야 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찬양은 단순히 입술이 찬양이 아닙니다. 내 삶의 고백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내 삶 가운데 경험되어 지길, 하나님의 성품이 내 삶에 구별 되이 드러나길 원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의 가르쳐 주신 최고의 기도는 바로 주님과의 관계에서 시작이 됩니다. 내 삶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러는 관계가 먼저 되어 있을 때, 기도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첫번째 기도의 제목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은 다양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그 성품을 묵상하며 그 분의 이름을 찬양하며 구별된 삶, 믿음의 삶을 한 주 살아가시며 주기도문을 통해서 기도의 문이 활짝 열리시길 축원합니다.

찬양 – 우리 함께 기도해 지난주에 함께 드린 찬양을 다시 한번 부르면서 기도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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